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학부 수준의 심리학을 조금 공부했다고 (저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학점은행제를 통해 고려대학교에서 짧게 심리학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우울, 불안 등의 신경증을 치유할 만큼의 깊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진 못하거니와, 이런 짧은 지식으로 누군가에게 감히 조언을 한다는 것은 저로선 상상도 못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언제부턴가 정신건강의 악화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이나마 드리는 것이 곧 제가 짊어져야 할 조그마한 의무와 책임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간극을 두고 위의 근거를 토대로 누군가에게 인간관계와 일상에 관한 고민 상담을 받고, 우울감과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매우 신중하게 확인된 사실들과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들을 전달하려 노력하였으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들에 안도와 감사를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는 것을 압니다만, 확실히 아는 것들에 한해서는 여러분께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본 글은 최대한 객관성이 확보된 정보만 전달하도록 노력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작성할 예정입니다. 20대 초까지 겪었던 우울감 등을 해결하는 데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도 짧게나마 적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을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그걸 판단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고, 당신이 의사와 약물에 어떤 편견을 갖고 있든 가장 가능성 높고 변하지 않는 사실 중 하나입니다. 항우울제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고, 약물을 사용하는 기술적인 이유도 충분히 있습니다.
집이나 회사 등과 가까운 정신과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드리고, 당신이 치료의 효과나 의사를 믿지 않더라도 절대 임의로 약물 복용과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큰 금단증상과 내성 등의 부작용을 안게 될 수 있으니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병원을 옮기거나, 약물을 변경하는 식으로 많은 시도를 해야 할 수 있지만, 당신은 당신이 겪는 고통 때문이라도 스스로를 도울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심리치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심리치료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증상 완화를 경험하고 일상생활에서 더 나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의 약 75%가 심리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1 심리치료는 정서적, 심리적 상태를 개선하고 뇌와 신체의 긍정적인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병가 일수 감소, 장애 감소, 의학적 문제 감소, 업무 만족도 증가 등의 이점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뇌 영상 기술을 사용하여 심리치료를 받은 후 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연구에서 정신 질환(우울증, 공황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기타 질환 포함)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심리치료를 받은 후 뇌의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심리 치료로 인한 뇌 변화는 약물 치료로 인한 변화와 유사했습니다.2
심리치료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상담사와 공동의 노력으로 치료에 접근하고,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임하며, 합의된 치료 계획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적절한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선 적지 않은 현실적 문제들이 따릅니다. 소위 사짜라고 불리는 민간 자격만 갖추거나, 아예 자격 없는 자칭 심리치료사들이 많고,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아 1 회기에 10만 원 정도 되는 거금이 들기 때문입니다.
후자는 제게 문의하시면 거주하시는 곳 근처의 적절한 상담 센터를 찾아드릴 수 있을 것 같고, 전자는 다행히 2023년부터 정부에서 34세 미만 청년들에게 분기마다 심리 상담을 지원해 주고 있으니 알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링크는 서울 대상이지만, 인천이나 부산 등 해당하는 지자체에서 문의하면 담당하시는 분이 친절히 알려드릴 겁니다.
https://youth.seoul.go.kr/site/main/content/mind_reliable_ask
두 번째
조금이나마
일상에서의 질서를 되찾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턴 저의 경험을 조금 섞어서 작성하겠습니다.
인간은 수면 패턴 등 생물학적 리듬이 조금 어긋나기만 해도 쉽게 우울해지곤 하는 존재입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계획하는 것은 망가진 일상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어떤 식물을 키워내는 것도 좋고, 방을 치운다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등의 작은 목표도 좋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구하길 노력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생활을 안정시키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삶에는 의미가 필요하고,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무질서와 혼돈에 압도되어 종국엔 아무 행동도 시작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긍정적인 감정은 우리가 무언가를 얻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가치 있는 목표로 나아가며, 그 경과를 지켜보는 게 긍정적인 감정들을 만들어냅니다. 스스로의 도전 과제를 만드는 것이죠.3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아이와 협상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4 스스로에게 질문하다 보면 자기가 정말 필요한 게 뭔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방치된 채 썩어가는 쓰레기의 악취와, 날벌레들이 알을 낳아 그대로 놔두면 질병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선, 당장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겁니다.
힘들고, 지치고,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두려운 아이가 방치해 둔 쓰레기를 치우게 하기 위해선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이겨낸 것을 칭찬하고, 음식이나 휴식 등 적절한 상을 주는 식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스스로 해결할 의지와 힘을 가졌음을 증명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일의 난도를 높여 가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점차 더 해결하기 어려운 공포심과 불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움이 될 만한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y00tvum7g1I
하지만 때론 감정이 너무 심하게 고장이 나서, 행동을 먼저 한 뒤 그게 자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관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이유씨가 가끔 말하는 우울할 땐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수행 가능한 작은 과제들을 반복적으로 계획하고, 해결하며, 점차 큰 목표로 나아가는 행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당신에게 되찾아 줄 겁니다.
세 번째
자기 비하를 멈추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군가의 삶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주변인들에게 얘기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기 비하를 멈추라는 것입니다. 삶을 망치는 좋지 않은 습관 중 가히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것을 배울 때마다 실수를 할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당신의 규칙이 실수할 때마다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더욱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들며, 좋은 문제 해결법이 전혀 아닙니다.
그 대신, 뭔가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문제를 작게 나눠서 생각을 해 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걸 못 하니 난 병신 머저리고 실패자다’라는 명제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옳지 못합니다. 현실적인 증거로 봤을 때 최대한 자신이 나쁘거나 무식한 인간이 아니라고 가정한 뒤, 자기가 겪는 문제를 천천히 관찰해야 합니다.
- ‘내 실력은 객관적으로 부족하니, 하루에 15분씩이라도 더 공부해보자’ ->
- ‘여기서 실수하고 망쳤으니, 이쪽은 앞으로 30분씩 더 공부하고 다른 접근을 시도해 보자’ ->
- ‘음, 이것도 안 되네, 조금 더 자주 보던가 아예 그만두고 내가 잘 하는 다른 것에 집중하자’
위처럼, 실재하는 문제 해결에 집중하다 보면 당신이 생각만큼 완전히 끔찍한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나아가 자기를 착취하고 고문하는 것을 멈추고, 골치를 앓던 문제를 잘게 쪼개 결국엔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만약 당신이 계획을 세우고, 어떤 일이든 시작하는 게 어렵다면, 가까운 사람이나 저에게 도움을 구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힘든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위와 별개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에서 부끄러움이나 감사를 느낀다면, 스스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다른 이들을 도와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치며
우울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질병입니다. 무가치함과 무의미함, 공허함 속에서 아무도 듣지 못할 울음과 울분을 쏟아내는 일, 천천히 의미를 잃어가는 가치 있었던 것들을 바라보는 것은 산 채로 썩어가는 듯한 실존적이고 실재하는 고통을 줍니다.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해봐야 할 정도로요.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려 노력하고, 스스로를 고통과 비참함 속에 두는 것들을 파악하고 멀리하는 것 만으로 많은 부분들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자신만의 빛나는 가치를 찾고, 삶이라는 찰나의 축제동안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미국 심리 학회. 심리치료의 이해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2016.
- Karlsson, H. How Psychotherapy changes the Brain. Psychiatric Times. 2011.
- Lally and Gardner, Promoting habit formation, 2011.
- Strack and Deutsch, Reflective and Impulsive Determinants of Social Behavior,2004
잘 읽고 갑니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언니 고마워요! 🙂
답이 늦었네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